곡물상이 연락 거점이 되던 시절

김한종은 대한광복회 충청지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자료에는 예산과 연기, 인천의 곡물상을 연락 거점으로 활용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건과 사람이 오가는 장사의 공간을 독립운동의 연락망으로도 쓴 겁니다.

광시의 생가지는 집안의 교육과 항일 활동이 이어진 곳으로 소개됩니다. 서당으로도 쓰였다는 기록이 있어, 단순히 태어난 장소만 남은 집은 아닙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만나 배우던 생활까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마련하고 친일 관리 처단도 실행했습니다. 김한종은 1918년 조직이 발각되며 체포됐고 1921년 박상진과 함께 순국했습니다. 사람을 모으고 자금을 잇던 활동이 어떤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