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을 요구하며 묘를 파헤치려던 사건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 아래로 옮겼습니다. 왕손이 나올 명당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가야사가 사라졌다는 사연도 전합니다. 남연군묘와 보덕사를 함께 보면 묘를 옮긴 집안과 절이 각각 겪은 변화를 생각하게 됩니다.

1868년에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행이 묘를 파헤쳐 유해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유해를 협상 수단으로 삼아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무역을 하겠다며 상대 권력자의 아버지 묘부터 건드린다는 발상이 황당합니다.

시도는 실패했지만 사건은 조선 말기의 대외 관계에 영향을 남겼습니다. 서양 세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놓고 민감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